소고기 사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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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2018

소고기 사줄게요

Quarterly_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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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라밤





 

"너 안 힘들어? 계속해?"

"넿, 저는 괜찮은데. 조금만 더"

"내가 힘들어서 물어본 거야. 이제 그만하고 쉬자"

"네에..."

 

주현 언니는 면접 예상 질문이 빼곡히 적혀있는 A4용지 뭉치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기지개를 켰다. 퇴근한 뒤 3시간 가까이 내 면접 준비를 도와주었으니 피곤하겠지. 이해하지만 그만하자는 말에 입이 툭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다. 나도 빨리 자리를 잡고 싶은데. 언니는 웃으면서 내 입술을 한 번 꼬집은 뒤 컵에 물을 따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쉬지 않고 말해서 그런지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내일 면접은 별거 아니라니까? 어려운 거 다 통과해 놓고 왜 그렇게 걱정해"

"잘하고 싶으니까 그러죠."

"잘할 거야. 지금 해야 하는 건 컨디션 조절.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 씩씩하게 가면 되는 거야"

"그래둫"

 

나는 한숨을 쉬며 식탁에 엎드렸다. 언니는 조용히 내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회사라 그런지 욕심이 컸다. 게다가 언니가 그 회사에 입사하고 난 이후로는 거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언니랑 같이 출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현실이 되면 얼마나 더 좋을까?

 

"시간 참 빠르다. 너가 내 면접 준비 도와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반대로 내가 도와주고 있네"

"그러게요. 그때 언니는 안 떨렸어옇?"

"떨렸어. 여러모로 떨려서 집중이 안 됐지"

"정말욯? 내 기억에는 언니 엄청나게 잘 집중했던 것 같은뎋. 다섯시간 넘게 이렇게 앉아 있기도 했잖아요. 다음날 허리랑 엉덩이랑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고요"

"너무 고마워서 합격하자마자 너한테 제일 먼저 전화했잖아. 부모님께 전화하기도 전에 너한테 먼저"

 

나는 식탁 위에 관자놀이를 대고 엎드려있다가 고개를 돌려 언니를 올려봤다. 언니가 웃으며 식탁 위에 턱을 대고 나를 마주 봤다.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니 온몸이 찌릿찌릿한 기분이다. 아, 나 지금 언니한테 너무너무 뽀뽀하고 싶어. 나는 입술을 감쳐 물며 시선을 피했다. 언니는 그날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슬기야! 언니 합격했다! 고마워! 사랑해! 그때처럼 흥분한 목소리가 아닌 차분한 목소리로. 언니가 '사랑해'라고 말한 순간 심장이 간지러웠다. 너무해. 그 말을 그런 목소리로 하면... 아아, 나 지금 언니한테 엄청나게 뽀뽀하고 싶어.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나는 울상이 된 얼굴을 팔에 파묻어 숨겨버렸다. 언니가 말하는 사랑해는 내가 말 하고 싶은 사랑해랑은 다르겠지. 친한 후배, 3년을 함께한 룸메이트에게 향하는 사랑해. 그 정도. 딱 그 정도.

 

"너는 합격 연락받자마자 뭐 할 거야? 너도 나한테 전화할 거지?"

"아니요"

"뭐야? 내가 이렇게 도와줬는데?"

"저는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할 거예요."

 

언니는 웃으면서 내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우리 곰돌 연애가 그렇게 하고 싶었어? 나는 언니가 나를 부르는 호칭에 불만을 토로하고 싶었다. 언니가 맨날 우리 슬기! 우리 곰돌! 이렇게 부르니까 내가 정말 언니의 뭐라도 된 것 같잖아요. 괜히 기대하고 설레게.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언니를 쏘아보았다. 내가 갑자기 쏘아보아도 언니는 웃으면서 나를 볼 뿐이었다. 심지어 손가락으로 내 볼을 콕콕 찌르며 장난까지 쳤다. 

 

"뭐라고 고백하려고?"

"소고기 사준다고 할 거예요"

 

내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 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곧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강곰돌 취업 준비가 아주 힘들었구나. 내일 면접 보고 오면 언니가 소고기 사줄게. 힘내"

 

그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언니 그거 알아요? 순수한 마음으로 사주는 건 돼지고기까지래요. 언니가 소고기를 사준다고 하면 나는 또 기대할 거예요. 나한테 뭔가를 바라는 거 아닐까 해서요. 근데 언니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소고기는 내가 사야 하는 거예요. 나는 언니한테 바라는 게 많거든요. 

 

 

 

언니랑 나는 같은 학교이긴 했지만, 접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나는 학교에 엄청나게 예쁜 언니가 있다는 것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고 어쩌다가 스쳐 지나갈 때 아 저 사람이 그 언니인가 보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언니를 제대로 알게 된 건 친구 승완이를 통해서였다. 승완이와 언니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대학에 입학하면서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승완이는 통학이 불편해서 자기 학교 근처로 집을 알아보게 되었고 승완이의 빈자리를 내가 차지하면서 우리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그때 나는 월세를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말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기 때문에 룸메이트가 어떤 사람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승완이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 말고는 가격, 시설, 학교에서의 거리 모두가 완벽했으니까. 언젠가 언니한테 나랑 사는 거 걱정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만나기 전에 승완이가 사진을 보여줬는데 신뢰 가는 얼굴이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동거를 시작했다. 언니와 함께하는 생활은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잘 맞았다. 그리고 3년 동안 두 번 이사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친해지고 편해져서 이제는 언니가 집에 없는 날이면 쓸쓸하고 어색할 정도인데 마음은 편하지 않다. 내가 언니를 좋아하게 된 게 문제였다. 어느 날 문득 언니랑 식탁에 마주 앉아서 밥을 먹다가 계속 이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니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채기도 전에 언니랑 평생 같이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언니가 나랑 잘 맞는 룸메이트라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농담으로 나중에 우리 결혼하자고 말하면서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언니가 미래에 다른 누군가와 결혼하여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별안간 화가 나는 것이었다. 확실하게 질투였다. 누구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질투였다. 곧 내가 언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볼을 꼬집거나 엉덩이를 토닥이거나 다정한 말을 하거나 하는 언니의 행동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지만 내 마음이 달라져서 나 혼자 설렜다가 실망했다가 기대했다가 화가 났다가 하는 게 힘들었다. 

 

혼자서 속앓이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고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막상 언니를 마주 보고 있으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서 다음 기회로 미뤘다. 직접적인 표현이 어렵다면 돌려 말하자는 생각에 다양한 방법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너무 돌려 말했는지 그건 언니한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술의 힘을 빌리려고도 했지만 긴장해서 조절을 못 한 나머지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마셔버렸다. 결국 주량만 늘고 번번이 실패해버렸다. 요즘은 취업 준비 때문에 잠시 고백 휴식기를 가졌지만 이번에 합격한다면 언니한테 꼭 말할 거다. 

 

 

 

"곰돌, 일어났어?"

"응... 일어나써옇"

"아직 안 일어난 것 같은데?"

 

다음 날 아침 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깨긴 깼지만 일어나긴 싫어서 몸을 말아서 이불 속으로 몸을 말아 넣고 숨었다. 들어간다는 언니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언니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생활 존중을 이유로 허락 없이 서로의 방에 침입하지 않았지만, 아침만은 달랐다. 내가 아침에 언니의 방에 들어가는 경우는 회식 다음 날. 과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언니에게 꿀물을 챙겨주고 깨워주기 위해서였다. 평소 언니보다 늦게 일어나는 나는 그렇게 언니를 챙겨주고는 곧바로 침대로 다이빙했다. 언니가 아침에 내 방에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모든 평일. 단순히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우기 위해서였다. 이불 위로 엉덩이를 팡팡 때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빼꼼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출근 준비를 끝낸 언니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일어나서 준비해야지"

"면접 2시에 보는데"

"나 출근하면 너 계속 잘 거잖아. 어서 일어나"

 

언니는 이불을 치우고 내 팔을 잡아당겼다. 여기까지는 매일 아침과 똑같았다. 평소랑 다른 점은 내가 일어나 앉았는데도 언니가 계속 잡아당긴 것. 그 바람에 나는 언니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언니는 잡아당기던 팔을 놓고 나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면접 힘내. 그리고 등을 세 번 토닥인 다음에 출근한다며 방을 나가버렸다. 

 

하루종일 면접에 대한 긴장감으로 벌벌 떨 거로 생각했는데 아침에 내 잠을 깨웠던 언니와의 포옹이 자꾸만 생각나서 면접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언니는 이걸 의도했던 것일까?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을 볼 수가 있었다. 게다가 언니가 어제 말했던 것처럼 오늘 면접은 별거 아니었다. 1, 2차 면접 때처럼 너를 샅샅이 파헤쳐보겠다는 공격적인 태도가 아니라 앞으로 함께 잘 해봅시다에 가까웠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곧바로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다. 이럴 거면 면접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지. 괜히 사람 긴장되게 말이야. 어쨌든 원하던 회사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즐겁기만 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그대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업무시간이라 방해가 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언니는 생각보다 금방 전화를 받았다.

 

"곰돌! 면접 잘 봤어?"

"넿! 언니 오늘 일찍 퇴근해요? 나랑 같이 저녁 먹어요"

"당연하지. 내가 너 면접 끝나고 소고기 사준다 했잖아"

"아니요. 소고기는 제가 사줄게요. 언니"

"그래라 그럼."

 

언니는 어제 내가 한 말을 기억도 못 하는 것 같다. 너무 덤덤하잖아. 지금 이거 고백하겠다는 선전포고인데. 혹시 괜찮으면 집에 같이 가겠느냐는 말에 나는 알았다며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를 그냥 보내버렸다. 다른 사람이 3시간을 기다리라고 한다면 조금은 고민해봤을 텐데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서점에서 책을 한 권사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꽤 두꺼운 소설책이라서 한 권을 읽는 동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직 결말을 보지 못했는데 언니가 카페로 찾아와서 나는 책을 덮고 일어났다. 언니는 얼마 안 남았으니 기다려주겠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소설의 결말보다 언니와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궁금했다.

 

우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교대로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동네 고깃집으로 향했다. 언니는 앞으로는 매일 이렇게 함께 퇴근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살짝 겁이 났다. 최악의 결말이라면 둘 중 누군가 짐을 싸고 나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 계약일까지 두 달 조금 남았는데 기다려볼까. 메뉴판을 손에 쥐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언니가 뭘 그렇게까지 고민하냐며 웃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정신을 차리고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가격을 보고 살짝 쫄았지만 이제 곧 내 지갑도 두둑해질 거니까 괜찮겠지. 

 

"지금까지 수고했어. 오늘은 언니가 구워줄 게 집게 이리 줘"

"감사합니닿"

 

주문한 갈빗살이 나오자 언니는 맛있게 고기를 구워 내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맛있는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자 고백에 대한 고민은 잠시 사라졌다. 어차피 계획한 타이밍은 지금이 아니 조금 있다가 고민해야지. 언니는 맨입으로 먹기는 섭섭하다며 술도 주문했다.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면 긴장이 덜 되겠지. 갈빗살 접시는 금방 비워졌고 약간 모자란 느낌에 마무리로 냉면과 차돌박이 된장찌개도 나눠 먹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안주 삼아 둘이서 한 병씩 소주 두 병을 뚝딱 비웠는데 정신이 너무 또렷하다. 오늘따라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동안 늘어버린 주량 때문일까. 

 

이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말라비틀어진 고기 부스러기를 젓가락으로 찌르면서 괜히 밍기적거렸다. 고깃집에서 밥 먹고, 고백이라니 갑자기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더 일찍 해야 했는데. 작전을 다시 짜오자. 좀 더 그럴듯한 작전으로. 지난 1년간 실패한 작전만 수십 개니까 오늘 하나 더 추가한다고 큰 타격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계산서를 챙겨서 일어나려는데 언니가 나보다 조금 빨랐다. 언제 카드까지 꺼낸 걸까? 나는 황급히 언니를 붙잡았다.

 

"오늘은 제가 살 거예요"

"됐어 임마. 너한테 얻어먹을 거면 돼지고기나 먹었지.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저 이제 취업했어요! 그리고 돼지고기는 안 된다고요!"

 

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일단 취업을 축하한다고 말한 다음에 언니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너 돼지고기 무시하니? 나는 얼굴을 구겼다. 아니. 이게 아닌데. 망했다. 지금까지 망쳐버린 수많은 고백 작전 중 이번이 최악이었다. 언니 말이 맞았다. 취업 준비가 아주 힘들었나 보다. 내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는데 언니는 돼지고기를 예찬하기 시작했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가브리살 무엇하나 빠짐없이 맛있다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갈매기살도 엄청 맛있어요. 진지한 표정을 일관하던 언니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야 곰돌. 무슨 고백이 이래?"

"넿? 저 아직 아무 말 안 했는데요?"

"안 하기는 합격하면 좋아하는 사람한테 소고기 사준다고 하면서 고백할 거라 그랬잖아. 자기 입으로 다 말해놓고서는? 네가 나 좋아하는 거야 새삼스러울 거 없고 나도 좋은데 도대체 왜 소고기를 사주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내가 고백하려던 것을 언니가 눈치챘으니 작전 취소하겠다는 계획을 취소해야 하나? 게다가 좋아하는 것은 진작에 다 들켰던 모양이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알았던 걸까? 들켰을 만한 요소들을 떠올려보는 데 전혀 모르겠다. 눈알만 굴리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 언니는 그간 나의 행동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일단 곰돌 너 내 얼굴 볼 때마다 눈에서 하트 뿅뿅이야. 숨길 생각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게 아주 마음에 들어. 그리고 틈만 나면 나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버릇 있는 거 알아? 자기 귀여운 거 생각도 못 하고. 또 하루라도 못 보면 시무룩해져서 보고 싶다고 말하고 영상통화 한 번 하면 금방 헤헤 웃고. 너 취업에 집중하라고 참고 기다렸는데 그럴 때는 연애 미리 보기 같아서 기분이라서 괜찮더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 나한테 언니 너무 좋아요. 평생 언니랑 살 거예요 잉잉 그러면서 술 취해서 운 것만 세 번이거든? 뽀뽀 미수는 다섯 번. 성공은 한번. 어떻게 말보다 행동이 먼저니? 아주 바람직하고 앞으로가 기대돼"

"제가 그랬다고옇? 엏? 우리 뽀뽀했어욯? 정말요?"

"응. 정말. 내가 뭐하러 거짓말하겠니. 앞으로 술은 너무 마시지 말자. 걱정되니까. 그리고 회식하면 나한테 꼭 연락해. 마중 나갈게"

"네... 감사합니닿"

"아무튼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맨날 왜 그렇게 꼬아. 그래서 소고기는 왜?"

 

좋아한다는 말이 너무 어렵단 말이에요. 겁이 나서요. 근데 언니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알았다면 쉽게 말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그런 어처구니없는 작전들 말고 그냥 좋아한다고 말이다. 언니는 어서 이유를 말해보라는 듯 나를 향해 턱 까닥였다. 그래서 소고기가 뭔데 그래?

 

"인터넷에서 봤는뎋 순수한 마음으로 사주는 건 돼지고기까지라고..."

"그게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니깧... 저는 언니한테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소고기"

 

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언니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계속해서 웃는 언니를 원망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웃을 것까지는 없잖아. 민망하게. 언니는 여전히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다시 계산서를 잡아들었다. 그러니까 왜 자꾸 언니가 계산하러고 하냐구! 내가 언니의 손목을 붙잡자 언니는 계산서를 다른 손에 옮겨 쥐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슬기야. 이제 집에 가자"

"언니, 계산 제가 한다구옇"

"내가 사고 싶어서 그래. 취업한 거 축하하고 애인 생긴 것도 축하하고."

"넿? 애인은 안 생...겼... 헣! 생긴 거예요? 잠시만요 언니? 내 애인할 거예옇?"

 

언니는 나의 손을 쭉 잡아당기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와. 이렇게 완벽한 얼굴이 오늘부터 내 애인 얼굴이야? 언니는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너보다 내가 훨씬 불순한 마음이거든?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슬기한테 배터져라 소고기 사줘야겠다. 그치?"

 

언니는 어서 집에 가서 전에 미수로 끝났던 뽀뽀나 마저 해보자며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언니 뒤를 졸졸 쫓아가며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너무 좋아서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가브리살, 갈매기살 모두 좋지만 역시 소고기가 짱인 것 같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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